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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1737-1805)하면 <허생전(許生傳)>, <양반전(兩班傳)>, <호질(虎叱)>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몰락해가는 조선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것 뿐 아니라 1780년 북경을 거쳐 건륭제가 피서차 가있던 열하까지 다녀오면서 보고들은 내용을 담은 <열하일기>로 유명합니다. 열하일기는 청나라의 정치·경제·병사·천문·지리·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새로운 사조, 즉 실학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연암의 산문과 시편으로 뽑아 만들었다는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는 눈물에 관한 연암의 색다른 시각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220쪽)”라고 의문을 표하면서도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감정이 극에 달해야만 우러나는게 아닐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송열교수님의 <옛 사람들의 눈물; http://blog.yes24.com/document/4383704>에서 조선시대 남성들도 마냥 눈물을 감추고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암이 심노숭(1762-1837)과 교류가 있었더라면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눈물이란 무엇인가, 52쪽; http://blog.yes24.com/document/4585497)”는 점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죽은 누이를 그리는 마음을 그린 시 ‘누님을 배웅하며’에 “보내는 이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네(224쪽)”라고 적거나 ‘맏누님 증 정부인박씨묘지명’에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때를 떠올리니 눈물이 솟구친다.(117쪽)”고 적은 것을 보면 연암은 감정이 풍부한 남정네였던 것 같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신 편저자께서 책끄트머리에서 연암의 산문이 사설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암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서양과학에 눈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산문편의 마지막에 모아두신 ‘매력적인 글쓰기란?’에 눈길이 갑니다. 아무래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탓이겠습니다. 니체는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발도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확고하고 자유로우며 용감하게 혹은 들판을, 혹은 종이 위를 달린다.(비극의 탄생)”라고 적었습니다만, 연암의 <열하일기>는 딱 니체의 말대로 발과 손으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연암의 생각은 참으로 재미있고, 깊이가 있습니다.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것이므로,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는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글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조약돌인들 어찌 글 소재가 아니라며 버리겠는가(184쪽)‘라고 하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소재라도 생각을 가다듬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정제해내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생각을 가다듬어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옛글을 본받아 법고(法古)해야 한다는 주장과 창신(創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각각 옛것을 따라하고 본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괴벽하고 허황되게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여서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보통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되어 걱정거리를 만드는 문제가 있으니,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충분히 틀에 맞아 아담하다면, 지금의 글이 바로 옛글과 같이 품위가 있을 터라는 것이 연암의 생각입니다. “단 한 토막의 말일지라도 정곡 찌르기를 눈 오는 밤 채주에 쳐들어가듯이 할 수 있어야 한다.(198쪽)”는 연암의 촌철살인과 같은 글쓰기요령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적절하게 인용할 자료가 풍족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글을 잘 짓는 자를 병법에 통하고 있음이라는 비유도 놀랄 법합니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다. 옛적부터 내려온 정례와 규칙을 주장하여 인용함은 싸움터의 진지를 구축함이요, 글자를 묶어 구절 만들기, 구절 모아 문장 이루기는 부대의 대오행진과 같다.…(195쪽)” 글쓰기를 위하여 병법도 익혀야 할 모양입니다.
연암 박지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다시 읽히고 재발견이 무궁무진하게 이루어지는 지식인이자 작가이다. 그의 문체는 섬세하면서도 빈틈이 없다. 또한, 웅장한 시상에 드넓은 기상이 서려 있다. 저자는 그런 연암의 모습을 그의 산문과 시편에서 찾아보았다. 연암의 해학 넘치는 산문 여러 편부터 기품이 넘치는 시, 그리고 저자의 그림까지 함께 어울려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교훈과 탁월한 문장력,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저자가 애쓴 노력이 돋보인다.

책 들머리에

산문편

혼자 사는 즐거움
청장과 도하
밤중에 강물을 아홉 번 건너다
새끼 까치와 농담 따먹기
혼자 사는 즐거움
매화꽃을 사시오
제비바위
박남수에게 답하다
‘기상새설’ 네 글자

네 이름은 네 몸의 것이 아니다
게으르게 살다
왕거미 거미줄 치는 모습
달밤에 호백이를 부르다
금학동 별장에 모여서
이희천을 그리며
석치는 참말로 죽었으니
네 이름은 네 몸의 것이 아니다
몰골도의 비법
늘그막에 누리는 즐거움
내원통의 도인들

이 쪽배 타고 떠나시면
무지개
바둑돌만한 구름
다만 한 가지가 없소
황금을 조심하라
온돌과 도둑
그게 바로 국숫집?
담뱃불 댕긴다는 핑계로
이 쪽배 타고 떠나시면

생각에 귀기울이다
코끼리 상
공작관에서 공작을 그리다
하풍죽로당
세월의 바퀴
망상
노인성

붓으로 말을 하다
도화동 복사꽃 아래서
이 시는 조선의 국풍이다
말똥구리 ‘낭’ 둥글 ‘환’
석록빛깔로 반짝이는 까마귀
지구는 정말 둥글게 도는가?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가?
해와 달을 쌍으로 놓으면

매력적인 글쓰기란?
별같이 동글동글한 소리
구태여 비슷한 것을 구하려는가?
새롭게 창조함이 옳지 않겠는가
붉은 깃발을 세우라
글에도 빛깔이 있는가?

시 편

도중에 잠시 개다
농삿집
새벽길
극 한
강가에 살며
설날 아침에 거울을 마주 보며
집을 옮기다
요동 벌판을 새벽에 지나며
산행
소월대
내청각
감영지
송음정
유춘동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그리움
술을 조금 마시다
누님을 배웅하며
살구꽃을 구경하며
연암에서 선형을 생각하다
구련성에서 노숙하며
아홉 날 맹원에 올라 두목의 시에 차운하다
통원보에서 비에 막히다
필운대의 꽃구경

책 끄트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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